Tuesday, November 9, 2010

뇌종양 투병 캄 이주노동자 소트사방 씨

캄보디아 법당 지도법사 린사로 스님이 소트사방 씨를 위한 쾌유발원 기도를 하고 있다.
“6개월 내 사망할 확률이 95%입니다.”뇌종양으로 투병중인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소트사방(28) 씨에게 내려진 진단은 사실상 시한부 선고였다. 통역을 위해 자리를 함께한 린사로 스님(군포 캄보디아 법당 지도법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통역을 잊은 스님에게 소트사방 씨의 의문 섞인 눈빛이 와 닿았다.
“지금으로서는 조직검사나 수술도 힘들다고 판단됩니다. 종양의 크기는 1.5cm이지만 뇌간에 위치하고 있어 섣불리 손을 대면 위험해질 수 있어요. 병원 측에서 항암치료를 비롯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치료를 통해 호전될 것이라 예측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의사의 말이 이어졌다. 의사는 린사로 스님에게 “환자가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여생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다.
28세의 젊고 꿈 많은 청년에게 “남은 삶이 6개월에 불과하다”고 전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힘겹게 꺼낸 스님의 말을 그는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두통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됐을 때부터, 그리고 경북 상주의 한 작은 병원에서, 서울에 위치한 큰 병원으로 옮겨올 때부터 이미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트사방 씨는 2년 전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고향에 돌아가 집도 사고 결혼도 해 행복한 삶을 꿈꿨다. 천성이 부지런한 데다 쉬지 않고 일한 덕에 1년 만에 브로커에게 빚진 3000달러(한화 300만원)를 갚았다. 빚도 갚았으니 돈을 모아 고향에서 가게를 하나 차리면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행복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한순간 미등록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면서 그가 꿈꾸던 행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농장일이 힘들어 공장으로 옮긴 것이 ‘사업장 이탈’로 기록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고용주들은 미등록 체류자인 그에게 최저임금보다 못한 임금을 주거나 아예 월급을 주지 않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했다.
그러나 올 8월 경, 날로 심해가는 두통에 그는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구토 증세까지 동반했다. 병원을 찾아 약을 처방받았지만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왼쪽 팔다리가 마비되는 증상까지 일어났다. 병원에서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구미 마하붓다센터에서 소개한 린사로 스님에게 의지해 서울로 온 것이 올 9월 25일. 예측했던 대로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그를 짓누르는 것은 치료비 걱정과 돈이 없어 고향으로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마음이 너무 아파요. 가족들이 보고 싶어요. 돈이 없어서 치료비 걱정도 매일 해요. 고향으로 갈 차비도 없으니 막막할 뿐이죠.”
시한부 신세에 타국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신세가 막막해 눈물이 쏟아진 일도 부지기수다. 어짜피 죽을텐데 갚지도 못할 병원비만 늘어간다는 생각에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쁜 생각이 들 때면 가족들을 떠올렸다. 고향에서, 가족들의 품에서 생을 마무리 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생겼다.
“가족들에게는 내가 조금 아프다고만 이야기 했어요. 부모님이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많이 슬퍼하시겠지만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요.”린사로 스님이 그를 위한 쾌유발원기도를 하는 동안, 합장한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소트사방 씨는 11월 15일 5주간의 방사선 치료를 마치면 구미 마하붓다센터로 돌아가 귀국을 준비할 계획이다. 병원비도 병원비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비행기표, 그리고 진통제를 구할 비용을 마련하는 일도 쉽지 않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가 고향 가족들의 품에서 삶을 회향하기 위해 불자들의 온정이 절실하다. 농협 032-01-183035 (주)법보신문사 02)725-7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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